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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OB스토리

[팀장으로 산다는 건] #23 리더는 일이 아닌 구조를 관리한다

[팀장으로 산다는 건] #23 리더는 일이 아닌 구조를 관리한다


 

몇 개월 전, 다른 회사 팀장님 한 분과 만남을 갖게 됐습니다. 온라인에서 제 글을 보시다가 개인적으로 연락을 주셨습니다. 황송한 요청이긴 했지만 정확한 조언을 드릴 수 있을지 자신이 없고 코칭이 제 전문 분야도 아니기 때문에 망설였지만, 그래도 만났으면 좋겠다고 하셔서 만남을 갖게 됐습니다.(다행히 코로나 거리두기 단계가 낮은 시기에 뵈었습니다) 

 

미팅 장소에 먼저 가서 기다리고 있는데, 단번에 그분임을 알아챌 수 있었습니다. 잔뜩 찌푸리고 피곤함이 묻어나는 얼굴이었습니다.

 


원치 않던 팀으로의 팀장 발령

"고맙습니다... 어디다 얘기도 못 하고 있다가... 올리신 글들 보면서 용기 냈습니다. 실은 팀원들과 갈등이 심해서 고민이 이만저만이 아닙니다." 

 

대략 한 시간가량 저는 듣기만 했습니다. 민감할 수 있는 정보는 제외하거나 명칭을 바꿔서 그분의 사정을 옮겨봅니다.

 

중견 제조업체 마케팅기획팀장 3년 차. 나이는 40세 전후. 이전엔 마케팅 실행팀에 있었으나,‘기획-실행 조직’간 시너지가 필요하다는 경영진 판단으로 마케팅기획팀장으로 발령 남. 본인은 원치 않는 인사였음.

 

문제상황 1) 팀원들의 기획 실무역량 수준이 낮다고 느낌. 일을 시키면 현장과 거리 있는 아이디어만 가져옴. 독려도 하고 직책도 해 봤지만 나아질 기미가 없음. 이런 상황이 반복되다 보니 팀원들과 관계가 소원해짐.

 

문제상황 2) 제대로 된 기획안을 내지 못해 소속 영업본부 회의 때마다 공격 타깃이 됨. 본인을 믿고 팀장으로 발령을 내준 영업본부장은 재작년 퇴사. 신임 본부장으로부터 압박이 심한 상황임.

 

문제상황 3) 기존에 팀원이 5명이었는데, 마케팅 채널 부서가 해체되면서 3명이 넘어오는 바람에 팀원이 8명으로 늘어남. 인원이 늘 어나 여러 문제가 더 심각해지고 있음.

 

 

“이런 리더가 되고 싶진 않았는데”

예상보다 심각한 수준이라 그 자리에선 딱히 뭐라 권고를 드릴 수가 없었습니다. 작별 인사를 하고 나오려는데, 팀장님께서 힘없는 목소리로 그러셨습니다.

 

"저도 이런 리더가 되고 싶지는 않았어요. 모든 게 팀원 잘못이라고 생각하지 않아요. 잘못을 따진다면 리더인 제게 더 있겠죠." 

 

 

이야기를 다 들은 뒤 제가 내린 결론은 다음과 같았습니다.

 

- 팀장과 팀원들이 각기 다른 분야에서 있었던 상황이라 처음부터 신뢰가 부족했다.

- 이러다 보니 팀장은 마이크로 매니징을 하게 됐는데, 사안별로, 때를 가리지 않고 무차별적이었다. 

  팀장이 일을 시키는 방식에 가장 큰 문제가 있었다. 결국, 팀원들은 자신들의 실력을 펼쳐 보일 공간이 없었다.

- 신임 본부장과의 기본적인 인간관계는 이슈가 없다고 하니, 업무 성과를 향상하면 호전될 수 있다고 본다.

- 팀원이 늘어났는데, 팀을 운용하는 방식은 그대로였다.

- 팀장은 책임감을 느끼고 있으며, 개선을 위해선 뭐라도 하겠다는 점이 그나마 긍정적이다.



리더는 일이 되게 만드는 사람

생각을 정리하며, 팀장님께서 마지막 말씀 중 리더(leader)의 어원을 찾아봤습니다. 여러 설들이 있지만 제 눈길을 끈 건'고대 유럽에서 가이드(길잡이)'라는 것이었습니다. 지금처럼 지도책이나 내비게이션이 없는 때 야생동물이 출몰하는 지역이나 사냥감들이 있고, 안전하게 정주할 곳을 아는 사람이었습니다. 구전을 통해 그런 노하우는 전수됐을 것이고, 생존을 위한 비책을 갖고 있던 그들은 무리에서 중심적 역할을 담당했을 겁니다. 그런 맥락에서'가이드'를'리더의 일 관리 '관점에서 재구성해 봤습니다.

  

  

첫째, 가이드는 그 길을 이미 잘 알고 있다.

길을 숙지하고 있어야 일행을 안전하고 효율적으로 인도할 수 있습니다. 회의를 하다 보면 설익은 아이디어나 화두를 툭툭 던지면서 안을 만들어보라는 상사가 있습니다. 구체적인 설명 없이, 자기도 원하는 것을 모른 채 무조건 해 보라는 식입니다. 좋은 리더라면 본인의 이해 정도를 설명한 후 함께 고민하자고 할 것입니다. 업무지시는 항상 준비된 상태에서 명확하고 자세히 이뤄져야 하고, 구체적인 내용까지는 아니라도 본인이 바라는 상(想)이나 기대 수준을 말할 수 있어야 합니다.

 

구체적인 업무 지시가 없다면, 직원들의'이해력'은 떨어지고 '추리력'만 향상될 것입니다. 본인의 설명이 충분한지는 회의가 끝나고 팀원들이 회의실에 남아 얘기하는 상황이 반복되는지 살피면 알 수 있습니다. 아울러 지시한 사항은 반드시 회의록 등의 기록을 남겨서 서로 이해한 바가 일치하는지 확인할 것도 좋은 방법입니다.

 

 

둘째, 가이드는 무리에서 신망을 받는 사람이다.

신뢰는 모든 관계의 기본입니다. 부부, 연인, 친구, 그리고 동료 간에도 말이죠. 위의 사례는 서로 신뢰 관계가 형성되지 않은 상황이었습니다. 기존에 기획부서와 실행부서가 반목하기 십상이었을 텐데, 상대팀 사람이 팀장으로 오니 팀원들의 불만도 상당했을 겁니다. 이런 상황에서 관계에 대한 고려 없이 신임 팀장이 마이크로 매니징을 했으니 감정의 골만 더 깊어졌을 겁니다. 이런 경우, 시간이 걸리더라도 과거 가졌던 서로의 입장과 상대방에 대한 희망사항을 솔직히 공유하는 게 요구됩니다.

한 가지 더.'신뢰'는 단순히 상대를 믿어주는 것에 그치지 않습니다. 상대에게 반대 의견을 제시했을 때 그가 비정상적으로 반응하지 않을 거라 믿는 데까지 범위가 확장됩니다. 특히 이 부분은 팀워크에서 매우 중요합니다. 이런 분위기를 형성하기 위해서는 상대적으로 덜 중요한 이슈에 대해서는 100% 만족은 되지 않더라도 팀원의 의견에 따라주는 아량도 필요합니다. 또한 팀장 본인의 의사결정에 오류가 있음을 솔직히 인정하는 모습을 보이는 것도 매우 중요합니다.

 

 

셋째, 가이드는 대략의 도착시간을 가늠하며, 중간에 점검한다.

길을 알고 있는 가이드는 현재 인원, 이동속도, 식량, 기후 등을 종합적으로 판단해서 언제쯤 목적지에 도착해야 할지를 추정합니다. 어떤 여정이든 편하고 넉넉한 시간이 주어지는 경우는 거의 없기에, 가이드는 다소 무리가 있어도 주어진 조건들을 조합해 계획을 세우고 사람들에게 일정을 전달합니다.

 

여러 번 회의를 거듭하고, 많은 이슈를 다루다 보면 납기에 대한 지시나 합의를 놓치는 경우가 종종 발생합니다. 팀장은 결과 보고가 필요해 팀원에게 요청하는데, 팀원은 납기 얘길 듣지 못해 우선순위에서 미뤄두고 있다 갑자기 보고서를 달라고 한다고 느껴 의견 충돌을 겪기도 합니다.

 

애초 지시 단계에서 완료 시점을 명확히 지시하고 중간에 보고를 받는 식으로 진행하자고 합의하고 진행하는 게 바람직합니다. 위의 사례처럼 새로운 팀원이 새로 영입되었을 때는'중간 점검'의 중요성이 더더욱 중요해집니다. 아울러 팀장의 시간을 확보해 줄 '부팀장'을 활용하는 것도 염두에 둬야 합니다.(현실적으로 6~7명이 한 명의 팀장이 관리할 수 있는 최대치라고 생각합니다)

 

 

넷째, 가이드는 오늘의 여정을 기억해 둔다.

무사히 여정을 마치고 목적지에 대부분 무리의 사람들이 건강하게 도착했습니다. 다들 기쁜 얼굴로 안도감에 젖어있을 때 가이드는 그동안의 여정을 다시 떠올려봅니다. 자신의 생각이 옳았던 점, 예상치 못했던 점, 잘못 대처했던 점 등. 그렇게 회상을 통해 교훈을 찾으려 합니다. 그런 자세는 전임 가이드가 가르쳐준 '가이드의 태도'였습니다. 그런 지식이 전수되지 않았다면 매번 같은 이유로 여 정에 실패하고 말았겠지요.

 

'소잃고 외양간 고친다'란 속담이 있습니다. 저는 한 마리 소를 잃은 뒤라도 외양간을 제대로 고쳐둔다면 나중에 소 떼를 잃는 일은 발생하지 않을 거라 생각합니다. 대부분의 조직에선 잘 된 케이스만을 기억하고자 합니다. 실패를 직시하고 싶지 않기 때문입니다. 결과의 실패가 권장될 수는 없겠으나 최선을 다한 과정의 실패라면 반드시 기억해야 합니다.

 

 

리더는 구조를 관리하는 사람

가이드는 무리 하나하나가 제대로 따라오는지 챙기지 않습니다. 그저 방향을 제시하고 조언하며 점검할 뿐입니다. 리더도 마찬가지입니다. 리더가 어떤 이유에서든지 세부 일을 하겠다고 나서는 순간, 팀원들은 생각과 행동을 멈추고, 그것만 좇을 겁니다. 설사 성과가 나더라도 그건 팀장의 개인 플레이지 팀워크는 아닙니다.

아쉬운 점은 많은 팀장이 일을 잘한다는 이유에서 승진되며, 팀장이 된 후에도 전보다 중요한 일을 할 뿐 실무에서 헤어 나오지 못한다는 것입니다. 이는 분명 조직의 문제이며, 개별 팀장의 문제가 아닙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팀장은 팀을 책임져야 할 위치에 있기에 진짜 리더로서 일을 시작하고 준비할 기회를 갖고 있다고 할 수 있겠습니다.

 

마지막으로 강조하고 싶습니다. 리더는(팀원들이 하는) 일을 하는 사람이 아닙니다. 일하는 구조를 만들고 관리하는 사람입니다. 외로운 마이크로 매니저가 되지 마시고, 함께 하는 가이드가 되시길 바랍니다. 여러분을 응원하겠습니다.




■ 필자 김진영 (jykim.2ndlife@gmail.com) 

■ 정리 인터비즈 박은애 

 

대학에서 문학을, 대학원에선 경영학을 전공했다. 22년 동안 대기업 중견기업 벤처 공공기관 등을 거치며 주전공인 전략기획 외에 마케팅 영업 구매 인사 등 다양한 업무를 경험했다. 최근엔 개도국 전자정부 컨설팅부서에서 프로그램 매니저를 맡고 있다. '성장과 발전은 끝이 없다'를 신조로 삼고 있으며, 함께 성장하기 위해 조직에 학습조직을 만들고 사내강사로도 활동하고 있다. 최근 관심사는 조직 변화와 새로운 리더십이다. 현재 <팀장클럽>에서 '팀장으로 산다는 건'을 연재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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