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각디자인을 전공하셨다고 들었어요. 직업 선택의 범위가 충분히 넓은 전공이라 생각하는데 그림책(동화책) 일러스트레이터를 어떻게 시작하셨는지 가장 궁금해요.
치열하게 고민하기보단 물 흐르듯 자연스러웠던 것 같아요.
고등학교 때부터 아르바이트로 학습지 삽화 작업을 했어요. 대학교에서 시각디자인을 전공하고 졸업 후에 취업을 준비하는데 현실적인 벽을 마주하다 보니 생각이 들더라구요. '내가 그리고 싶은 그림을 그릴 수 있는 곳은 있을까?’ (웃음) 진로를 선택할 때 그림 ‘장르’에 있어서는 고민했죠. 제가 좋아하는 색채감 자체가 따뜻한 쪽이라서 아동 일러스트라는 장르로 자연스럽게 방향을 잡게 됐어요.
현실적이 벽이라면 어떤 부분을 말씀하시는 건가요?
일러스트쪽으로는 회사가 몇 개 없어요. 특히 우리나라에서 수작업 일러스트로 회사를 다닐 수 있는 곳이 많지 않죠.
그림책 일러스트를 하기 위해선 프리랜서 활동이 당연하겠네요.
맞아요. 일러스트레이터에게는 매우 일반적이죠.
그림책 일러스트레이터, 친근한 듯 하면서 막상 익숙한 직업은 아니에요.
학습지나 교과서에서부터 그림책(동화책)에 실리는 그림까지 작업을 한다고 생각하시면 돼요. 주로 하는 작업은 동화책 일러스트를 제작하는 거구요. 그림책의 경우 글 작업도 함께 할 수 있죠.
어릴 때 읽던 그림책 속 그림, 만들어지기까지의 과정이 궁금해요
일단 원고를 먼저 받게 돼요. 보통 한 두 장 정도의 원고가 오면 그 내용을 바탕으로 그림작업에 들어가는 거죠. 동화책 한 쪽에 들어갈 문장의 길이와 내용, 배치 등을 고려해서 그림작업이 들어가죠.
글의 자리를 고려해서 그림을 그린다는 점이 일반 일러스트와는 다른 특징인 것 같아요.
맞아요. 책이란 가운데가 접히는 인쇄물이에요. 그렇기 때문에 이 접히는 자리에 중요한 인물이나 소품이 들어가면 안돼요. 접혀서 보이지 않으니까요.
그림책은 그림과 글이 함께하기 때문에 그림을 그릴 땐 글의 자리도 생각해야 해요. 글의 자리가 중요하다고 그림이 허전해도 안되죠. 그림의 여백이 자연스럽게 글 자리로 녹아 드는 느낌이 중요해요.
그러고 보면 그림책에서의 글의 위치는 ‘하늘’ 이나 ‘들판’ 이었네요. (웃음)
그렇죠. (웃음) 그림책은 어른들이 읽는 게 아니라 이제 막 글자를 익히는 아이들이 보는 책이에요. 아이들이 글씨를 편하게 읽기 위해서는 글씨와 그림이 겹치면 안돼요. 가독성에 문제가 생기니까요. 그런 범위를 다 계산해야 하죠.
그림만이 전부가 아니군요.
아무래도 그림책 일러스트레이터가 되기 위해서는 인쇄 미술에 대해 기본 이해를 갖는 게 필수적이죠.
어릴 적 그림책을 읽다 보면 책 속 그림에 연필선이 그대로 남아있는 그림들이 많았어요.
맞아요, 그림책의 경우 거의 다 수작업으로 진행된다고 보시면 돼요. 아동시장이라 조금 보수적인 성향이 있어서 볼로냐와 같은 경우에는 접수 자체를 수작업 그림만을 받고 있다고 알고 있어요.
*볼로냐 아동 도서전 : 이탈리아 볼로냐에서 열리는 세계 최대 규모의 어린이 책 박람회
사실 그림책 일러스트레이터와 북디자이너의 경계가 애매하게 느껴져요.
말 그대로 그림책 일러스트레이터는 그림책 안에 들어가는 모든 그림을 맡는 사람이에요. 반면 북디자이너는 표지에 글씨를 얹는다던가 출판사명을 새긴다던가 하는 도서의 전반적인 디자인을 맡고 있죠. 그래서 북디자이너의 역할도 굉장히 중요해요. 표지에서 그림을 배려한 글씨 혹은 글씨를 배려한 그림이 있어요. 두 이미지가 전부 강하면 안되죠. 강약을 조절하면서 가장 눈에 잘 들어오게 편집해주시니 북디자이너 분들의 손길이 굉장히 중요하죠.
그림책 일러스트레이터로 활동하다 보면 글 작가나 클라이언트와 의견을 조율하기도 어려울 것 같아요. 예를 들어 원하는 그림 방향이 있는데 다른 그림을 원할 때랄까요?
사실 서로의 자리가 명확해서 작품 자체를 언급하시는 경우는 거의 없어요. 다만 교과서 같은 경우 수정작업이 굉장하죠. 말 그대로 ‘교과서’ 그림. 아이들이 보고 배우는 그림이에요. 엄마가 혼자 앞치마를 하고 있는 그림이 있다면 양성평등이라는 이유로 수정해야 해요.
어렵네요. (웃음) 그림에 양성평등을 나타내기 위해 어떻게 수정을 하죠?
아빠 그림에도 앞치마를 입히거나 엄마 그림에서 앞치마를 지워야죠. (웃음)
하하, 아무래도 아이들이 보는 그림이다 보니 검수작업이 철저하네요. 수정 작업 이외에 업무상 이유로 스트레스 받는 경우도 있으실 것 같아요..
마감이 제일 힘들어요. 우리나라 여건상 한 작품만 할 수가 없어서 여러 작업을 동시에 하게 되요. 그러다 문제가 생겨서 하나가 늦어지면 다음 계획에 차질이 생기죠. (웃음) 그 외에 특별한 어려움은 없는 것 같아요. 금전적으로는 갑을 관계에 있긴 하지만 업무로 봤을 때는 각자의 자리에서 전문인이기 때문에 소신있게 행동하는 것이 가장 중요 한 것 같아요.
빨리 그림에 대한 피드백을 달라 독촉전화를 하시기도 하겠어요. (웃음)
간혹 그렇기도 하지만 대부분 독촉 전화는 제가 받죠. 아하하하.
작가님의 그림을 보면 각이 거의 둥글려서 그려져 있어요. 짙고 뚜렷한 색감보다는 햇빛이 비치는 듯한 색이 많구요. 작가님만의 색깔이 묻어나요.
그런가요? 쑥스럽네요. (웃음)
이렇게 그려야겠다. 라고 생각하고 그린 건 아니에요. 다만 어려서부터 포트폴리오나 작가소개에 항상 “ 따땃한 그림이 좋아요 “ 라고 썼죠. 그런 마음이 장시간에 걸쳐서 그림으로 표현 된 것 같아요.
따뜻한 그림과는 다른 느낌이네요. “따땃한 그림”
조금 더 따뜻한 느낌.. 을 담고싶어요. (웃음)
그런 따뜻한 그림을 보고 있는 아이들의 모습을 마주할 때 기분 참 좋으실 것 같아요.
맞아요. 제 원동력이기도 해요. 책이 나왔을 때 정말 기분이 좋아요. 책이 나오면 인터넷 후기를 남겨주시는 분들이 있는데, ‘우리 아기가 그림책을 보고 뭐 했어요~’ 이런 글들 보면 정말 기분이 좋죠.
△ 문채빈 멘토의 작업실 '청순한 작업실'
특별히 좋아하시는 그림책 작가가 있으신가요?
올리비에 탈렉이요. (웃음)
오…올리….
하하, 올리비에 탈렉이요.
이 작가는 많이 생소하실거예요.
많이 알려진 작가는 아니지만 작품에 굉장히 따뜻한 감성이 잘 살아있어요. 시선과 색감도 정말 좋구요.
그림의 시선이 좋다는 건 어떤 의미일까요?
작가가 그림을 담아낼 때 나타나는 관점이에요. 정의하긴 어렵지만 원고를 해석하는 차이로 봐도 좋겠네요. 동화책 그림을 그리다 보면 똑 같은 내용이라도 주인공 입장에서 혹은 제 3자의 입장에서 담아내는 그림이 모두 달라요. 어떤 시선으로 어느 순간까지를 담아내는가. 그 순간의 정취나 분위기를 어떻게 잡아내는가가 중요해요.
작가님이 가장 좋아하시는 작품, 올리비에 탈렉 작가의 ‘큰 늑대, 작은 늑대’ 의 시선은 어떤가요? 어떤 점이 가장 좋으셨어요?
보시면 느껴지실거예요. 책 속에 바람이 불죠.
사실 비 전공자가 작가님과 같이 그림책 일러스트레이터가 되기란 쉽지 않겠죠?
비 전공자분 중에서 활발히 활동하시는 분들도 계세요. 이 분야에서 전공자라는 개념은 거의 없어요. 전공자라고 해도 보통 일러스트를 전공한 경우는 드물기 때문에 추가적인 노력도 많이 필요하고요.
열의가 있다면 가능 할까요?
물론 미대를 나오지 않아도 상관 없어요. 학벌이나 전공이 크게 의미 있는 영역은 아니니까요. 오히려 공대 나온 일러스트레이터라고 하면 신기해 하고 보고 싶어 하겠죠. 작품만 좋다면 학벌과 같은 차별은 없어요. 하지만 현실적으로 비 전공자가 별로 없는 것도 사실이에요.
요즘 문화센터나 평생교육에서 일러스트 강의의 인기가 높다고 들었어요. 이런 곳을 통해서도 작가를 도전 해 볼 수 있을까요?
좋아요. 직업으로 이 일을 하고 싶다면 일주일에 하루 이틀의 투자로 프로작가를 생각하는 건 불가능한 것 같아요. 개인적으로 추가적인 시간 투자와 노력을 해야 한다고 생각해요. 다니던 직장을 그만 두고 몇 년씩 노력해도 앞 길을 알 수 없는 직업이니까요. 일러스트레이터의 경우 직업에서의 생존률이 낮아요. 취미활동과 같은 가벼운 마음이라면 취미로 매듭 짓는 게 좋아요. 자칫 내가 좋아하던 그림 그리는 일이 싫어질 수가 있으니까요.
△문채빈 작가님의 작품
그림책 일러스트레이터, 생존률이 낮다고 하셨어요. 왜 일까요?
경쟁이 치열한 거겠죠. 시장 진입이 어렵지는 않아요. 작가생활을 시작하는데 난이도가 높은 것은 아니지만 아동장르는 그 장르만의 특유 코드가 있어요. 매체에 대한 이해와 기본 실력 그리고 그 속에서의 경쟁도 견뎌야 하죠. 사실상 쉽게 남을 수 있는 직업은 아니에요.
그림책 일러스트레이터라는 직업이 비전이 있을까? 하는 고민도 많이 들구요.
일단 자신의 경쟁력을 쌓아 놓으면 전망은 밝아요. 기본적으로 상업 미술이다 보니 시장 자체가 좁지는 않죠. 일러스트 분야에서는 아동 미술이나 아동 시장이 특히 많이 발달되어 있어요. 학습지나 교과서의 일러스트 작업까지 하면 그림을 그릴 곳이 적지 않아요.
그림책 일러스트에 있어서 미디어 매체를 이용한 앱북 시장도 꽤 밝다고 생각해요.
음, 앱북 시장은 이미 시도되고 있긴 하지만 반응이 호의적이지만은 않아요. 아이들은 자극에 매우 약해요. 그런 아이들에게 앱북은 과대자극일 수 있죠. 어머님들도 이야기를 들어보면 아이가 잠들 때 한 장 한 장 넘겨가며 읽어주는 그림책을 더 많이 선호해요. 컨텐츠도 중요하지만 매체 특성 역시 매우 중요한 부분이라 구성하는 요소들은 더 자극적일 수 밖에 없구요. 저는 유아를 대상으로 한 그림책 시장은 앱북보다는 책이 좋다고 생각해요.
△문채빈 작가님의 작품
그림책 일러스트레이터가 되기 위해서 필요한 역량이 따로 있을 것 같아요.
매체에 대한 이해가 필요하죠. 이전에 말씀 드린 대로 아동미술은 아동미술만의 코드가 있어요. 그리고 인쇄미술은 인쇄미술만의 포인트가 있죠. 그림을 잘 그리는 사람은 많아요. 미대를 졸업했거나 어느 정도의 과정을 수료한 사람이라면, 그리고 이 직업을 꿈꾸는 사람이라면 그림은 모두 잘 그리시는 분이죠. 하지만 실력과 더불어 장르에 대한 이해가 뒷바탕 되어 있어야 해요. 다른 그림을 그리다가 그림책을 그리려고 하면 굉장히 어려워요, 아동미술과 인쇄미술에 대한 이해가 부재되어 있는 경우죠.
그렇다면 매체에 대한 이해를 위해서 어떤 연습을 하는 게 좋을까요? 어떻게 준비해야 할 지 막막해요.
모작을 해보세요. 보고 그리는걸요.
고민은 머리가 아니라 손으로 해도 충분 한 것 같아요.
그림책의 구성과 호흡은 쉽게 익혀지지 않아요. 그걸 가장 빨리 습득하는 방법은 좋아하는 작가의 그림책 한 권을 모작 해보세요. 모작은 가장 빠르게 아동미술의 호흡을 익힐 수 있는 방법이라고 생각해요.
데뷔라고 해야 하나요? 매체에 대한 이해도, 기본 미적 소양도 쌓아놨다면 현실적으로 어떻게 그림책 일러스트를 시작할 수 있을까요?
가장 흔한 방법으로 ‘산그림’ 이라는 사이트에서 많이 시작을 하시죠. 회원을 자주 받는 곳이 아니라서 자주 회원을 모집하지는 않아요. 회원가입을 위해서는 정해진 포트폴리오 기준이 있으니 그 기준을 만족하시는 게 먼저죠. 산그림의 회원이 되면 자신의 게시판이 생기고 작품을 게시할 수 있는데 그 사이트를 통해 업계에서 연락도 오고 클라이언트를 만나기도 해요. 많은 작가들이 이 사이트를 이용해서 일을 하고 있어요. 그 외에 포트폴리오를 들고 직접 찾아가거나 하는 방법들이 있어요.
동화작가로 활동하시면서 세운 목표도 있으실 것 같아요.
베스트셀러작가가 되고 싶어요. 아이들이 사랑하는 작품을 그리는 작가요.
따땃한 감성을 지닌 그림, 그래서 서점에 갔을 때 “아, 이 작가의 책이라면 우리 아이에게 선물해줘도 좋겠다. 아이가 좋아하겠다.” 믿고 볼 수 있는 책을 만들고 싶어요.
단순히 그림만을 잘 그린다고 도전할 수 있는 직업은 아니네요. 말씀을 듣다 보니 클라이언트와의 계약과 시장 내에서의 경쟁과 아동시장을 읽을 수 있는 실력과.. 가끔은 후회하지 않으세요? 더 편할 길로 갈걸.. 하는?
제가 그림 그리는 거 자체를 워낙 좋아하는 것 같아요.
기본적인 감성이 아동미술과 잘 맞으니까…
후회는.. 글쎄요, ‘왜 내가 이 일을 하지?’ 라고 생각한 적은 없어요.
‘이번엔 어떤 걸 그려볼까’ 하는 고민이, 제겐 더 컸던 것 같아요.
Side Story 리포터 후기
콘텐츠마케팅팀 리포터 이지은
담당부서:인터뷰
취재:이지은
INTERVIEW
이지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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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DITOR
이지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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