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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하 논의는 데이비드 데스티노 교수의 “신뢰의 법칙”에서 언급된 신뢰의 개념에서 출발하였음을 밝힙니다.
남을 믿는다는 건 쉽지 않은 일입니다. 파란불에 횡단보도를 건널 땐 빠르게 다가오는 차가 속도를 늦추고 정지선에 멈춰설 것이라는 믿음이 있어야 하죠. 만약 이런 믿음이 없다면 우리는 쉽사리 도로에 내려서지 못할 겁니다.
또 나는 믿었더라도 운전자가 신뢰를 저버린다면 그 즉시 우리는 아주 큰 위험에 빠집니다. 신뢰라는 건 일정한 위험 감수가 포함된 행위 인거죠.
여러 명이 협업하면 좀 더 나은 경제적 부가가치를 만들 것이라는 믿음으로 생긴 조직인 회사는 우리가 일상에서 접하는 것보다 훨씬 높은 상호 신뢰를 기반으로 합니다.
대표가 약속된 급여를 줄 것이라는 가장 기초적인 신뢰부터 내가 맡은 일을 끝내면 다음 업무를 맡은 사람이 안정적으로 그 일을 계속 진행시켜 줄 것이라는 분업과 시스템에 대한 신뢰까지 수십, 수백겹의 신뢰관계가 형성, 작동되어야 비로서 조직으로서 더 큰 가치를 만들어내죠.
하지만 신뢰가 많아야 한다는 건, 참여자들 입장에서 그만큼 위험 부담이 커진다는 뜻이기도 합니다.
근로기준법 등 법으로 신뢰가 강제되는 항목들은 회사에서 일을 열심히하기 위한 가장 기초적 조건에 불과하고, 공식적인 규정과 규칙과 시스템만으로 돌아가는 조직이라는 건 없습니다. 일이 즐겁고, 의미있고, 나의 성장을 돕는 일이 되려면 결국 같이 일하는 사람이 믿음직해야죠.
그러니 나의 윗사람이 거짓말하고 말을 바꾸고 돌변해서 나를 곤경에 빠뜨리면 ‘젠장, 정말 이놈의 회사 때려치워야 하나?’ 같은 말이 나오는 겁니다.
누구나 거짓말도 하고 곤란할 경우 적당히 식언하기도 하고 남의 곤경을 모른체 하기도 합니다만 회사에서 매일 얼굴보고 나의 근로조건과 미래, 부서의 성과를 결정하는 위치에 있는 사람이 업무와 관련해서 이런 식으로 신뢰가 없다면 그 회사 오래다니기는 정말 어렵겠죠.
말과 행동을 도무지 믿을 수 없는 상사들, 오늘은 그들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왜 상사는 동료나 후배보다 믿을 수 없는가?
우선 생각나는 이유는 상사가 나의 업무나 회사생활 전반에 큰 영향력이 있기 때문에 우리가 민감하고, 그만큼 상사가 어떤 행동을 했을 때 그 여파를 겪으며 상사의 신뢰도를 생각해보기 때문이라는 겁니다.
나와 관련된 의사 결정 권한이 있고, 업무상으로도 많이 부딪히는 사람이기 때문에 자세히 보게 되고, 그만큼 신뢰를 저버리는 모습도 많이 보게 된다는 논리죠.
그럼 사람을 가까이서 자세히 들여다보면 모두 믿을 수 없어지는 것이냐? 그럴리가 없죠. 때문에 이게 상사가 동료나 후배보다 못미더울 이유는 아닌 것 같습니다.
최근의 연구에 따르면 사람이 권력이나 물질적 자원 (돈, 유명세 등)을 많이 갖게 되면 그 사람이 타인의 신뢰를 저버릴 가능성이 높아진다고 합니다.
동일한 인물인데도, 돈이나 권력이 없을 땐 신뢰도가 높지만 성공하면 신뢰도가 낮아질 수 있다는 것이죠. 이런 일이 생기는 이유는 신뢰라는 행위가 앞서 이야기한 ‘위험 감수’ 행위이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미친 운전자가 있을지 모른다는 생각을 애써 누르고 횡단보도위에 올라서는 것은 길을 건너가야 생활을 지속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즉, 삶과 생존을 위해 그 행동이 필요하기 때문에 타인을 신뢰하는 위험감수를 하는 겁니다.
가난할수록, 권력이 없을수록 우리는 생존을 위해 타인을 믿어야 합니다.
도로 운전자는 파란불에 차를 세울 것이며, 지하철 시스템은 변수가 없을 것이고, 고시원 옆방 남자가 내 방을 침입하지 않을 것이며 연립주택 골목 어귀에 칼을 든 범죄자가 없다고 믿어야 삶이 유지되고 일상을 살아갈 수 있습니다.
물론 내가 알바하는 편의점 주인이 약속된 급여를 줄 것이고, 술취한 손님이 강도로 돌변하지 않을 것이고 건물주가 임대료를 갑자기 올리거나 편의점 본사가 본사수익금을 대폭 높혀달라고 해서 내게 알바비를 주는 편의점주가 사업을 접지 않을 것을 믿어야 합니다.
가진 게 없으면서 남을 신뢰하지도 못하면 사람이 사회속에서 살아갈 방법이 거의 없습니다.
반면 돈과 권력이 올라가면 굳이 남을 믿는다는 위험 감수 행위를 하지 않아도 삶과 일상의 유지가 가능해집니다.
내가 건물주인데 임대인이 월세를 내지 않으면 내쫓고 다른 사람을 들이면 되고, 편의점 본사 임원이라면 본사 수수료를 낮춰달라고 이야기하는 점주를 믿지 않아도 사업을 확대해가는데 아무런 문제가 없습니다.
돈이 더 많다면, 높은 담을 치고 밖에서는 집이 보이지도 않게 만들수도 있죠. 고시원이나 연립주택이나 아파트처럼 이웃을 신경쓸 필요도 없고 이웃을 믿을 필요도 없죠. 더 많다면 첨단 방범 장비에 대형 경비업체와 계약하면 됩니다.
신뢰가 아니라 계약서에 의존하면 되는 겁니다.
결국 내가 가진 것이 없으면 남을 믿어야 생활과 생존이 가능합니다. 하지만 내가 가진게 많으면 남을 믿을 필요가 없죠. 그리고 내가 남에게 믿음을 줄 필요도 없습니다. 남이 나를 안믿는다고 해서 내 삶이 위협받지 않거든요. 신뢰성이 없는 사람이 되도 되는 겁니다.
그럼 재벌도 아닌 우리 부장님은 도대체 왜 그렇게 신뢰성이 없게 행동할까요?
타인의 믿음을 배신하려는 속성은 돈과 권력은 절대적으로 많지 않더라도 자기가 속한 그 집단내에서 ‘상대적’으로 더 많으면 생겨난다고 합니다. 돈과 권력이 '상대적으로' 많으면 신뢰성이 떨어진다는거죠.
내가 최저임금도 못받는 비정규직이라고 해도 데리고 일하는 사람들이 나보다 더 열악한 노숙자라면 나는 그들에게 한 약속을 지키지 않게 된다는 것입니다. (윤리적으로 이러한 행동을 인정한다는 뜻이 아니라, 심리학자들이 실험해보니 이런 상대적 우월 조건에 놓이면 우리는 쉽게 신뢰를 저버린다는 뜻입니다. 사람에게 기본적으로 이런 경향성이 있다는 거죠.)
개인의 도덕성이 높거나, 명예를 중요시 한다면 돈과 권력이 생기더라도 신뢰를 저버릴 가능성이 낮겠지만 이런 소수의 사람을 제외하면 인간은 주변의 그룹 대비 약간이라도 돈과 권력이 있으면 그 그룹 사람들에겐 신뢰없게 행동을 합니다.
때문에 여러분의 회사 상사들은 여러분에게 신뢰성 없게 행동하는게 당연합니다. 그리고 여러분의 상사의 상사들은 다시 여러분의 상사에게 신뢰성 없게 행동을 할 가능성이 큽니다.
그래서 말을 지키지 않는 사장에 대해서는 여러분의 상사도 여러분과 함께 열심히 욕을 하지만, 정작 자기가 여러분에게 한 약속은 깔끔하게 식언하는 겁니다.
씁쓸하지만 수없이 반복된 실험을 통해 증명된 이야기입니다. 인간의 낮은 신뢰도는 본질적으로 돈과 권력의 함수이고, 상대적으로 많기만 하면 언제나 발휘될 수 있다는 것이죠.
신뢰도가 유난히 낮은 상사는 어떤 사람일까?
집단 내 권력자 혹은 약간이라도 우월한 사람은 신뢰성에 대한 동기가 약해진다고 말씀드렸지만, 사람마다 개인차라는게 있습니다.
높은 자리를 차지하고 있지만 자기가 뱉은 말과 자리에 어울리는 책임을 지키려고 노력하는 상사들이 가끔 있습니다. 멋진 사람들이고 명예를 아는 사람들이죠.
그리고 아무리 상사니까 식언한다고 해도 정도가 너무 심한 사람들이 있습니다. 유독 말바꿈과 거짓말이 심한 사람들은 어떤 사람들일까요?
이하에서 설명할 상사들의 특징은 무엇보다 식언을 하거나 거짓말을 할 때 그걸 거짓말로 생각하지 않는다는 겁니다.
상사 입장에서 보면 사실인데, 그 이야기를 듣거나 행위의 대상이 되는 부하 직원 입장에서는 도저히 그렇게 해석할 수 없는 말과 행동을 합니다. 부하직원 입장에서는 상사가 거짓말을 하는거죠.
이들이 이렇게 생각하는 이유는 권력이 더 많아서 이기도 하지만, 이에 더해서 상황을 철저하게 자기 중심적으로 해석하기 때문입니다. 자기는 진실을 말했고, 마음써서 행동한 것인데 그 말과 행동의 대상이 되는 사람 입장에서는 식언한 것이거나 악의적인 거짓말이 되는 거죠.
객관적으로 앞뒤 다 따져보면 분명 그 상사의 신뢰가 없는 것인데도 권력이 있기 때문에 ‘너 입장에서는 아쉬울 수 있는데, 이게 맞는거야’ 같은 식으로 생각하고, 그걸 말로 하는 겁니다. (가령 부하직원이 휴가를 쓰겠다고 말했을 땐 오케이 했다가 막상 휴가날이 되면 ‘이 바쁜데 꼭 휴가 가야겠냐?’ 같은 식으로 짜증내며 식언하고, 얼마 후 자기가 휴가낼 땐 ‘우리 회사도 이제 일많아도 갈 휴가는 가는 문화가 되야하지 않겠어?’ 같은 식으로 말하는 사람이라는 겁니다.)
1. 사이코패스같은 상사
자기 이익과 목표를 위해 집요하고 철저한 상사 중에 타인의 감정이나 상황엔 완전히 눈감고 사람을 그저 도구로 취급하는 상사들이 있습니다.
냉혹하고 철저하게 자기 목표에만 관심있고,부하직원들은 부리는 대상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게 다루는 사람들에게 ‘식언’과 ‘거짓말’은 그저 필요에 의해 얼마든지 쓸 수 있는 장치에 불과합니다. 물론 이들의 낮은 신뢰도에 대해 이야기해봐야 상대의 입장을 이해하지 못하기 (일부는 일부러 이해하지 않기도) 때문에 아무런 의미도 없죠.
이 사람들은 거짓말을 절대 하지 않습니다. 식언도 하지 않습니다. 자기가 보기엔 말이죠.
그저 상황이 좀 바뀐 것이거나, 급한 일이 생겨서 앞서 이야기와 다른 말을 하고, (자기가 보기에) 어쩔 수 없는 상황이니 사실과 조금 다른 말인 것이지 거짓말도 식언도 아니죠. 당하는 부하직원 입장에서는 미칩니다만 이런 상사들은 반발이나 의문제기를 용납하지 않습니다.
2. 철저하게 자기중심적인 상사
제 앞선 글 (“강압적 꼰대 해부학”)에 자세히 설명된 부류입니다. 이 부류의 상사는 ‘자기가 세상의 중심이고, 내 밑에서 일하는 부하직원들은 변방의 잡것들이다’라는 확고부동한 자기중심성을 가지고 있다는 점에서 사이코패스같은 상사와는 다릅니다. 하지만 이 희한한 ‘자뻑’ 성향을 제외하면 사이코패스와 똑같습니다.
자기의 이익을 최대화하기 위해 사람을 멋대로 주무를려고 하고, 상황을 멋대로 왜곡한다는 점에서는 사이코패스보다도 더 나쁜 놈의 부류죠. 사람을 ‘조종’해야 하고, 상황을 자기에 유리하게 왜곡해야 하기 때문에 아주 적극적으로 거짓말을 활용합니다.
사이코패스 상사가 냉혹하게 사람을 부리면서 자기가 거짓말하는 걸 인지조차 못한다면, 이 철저하게 자기중심적 상사는 상황에 따라 자기가 거짓을 말하는 걸 잘 알고 있으면서도 자기 이익에 맞춰 얼마든지 거짓말을 할 수 있습니다. 가령 부하직원을 부려먹기 위해 그 앞에서는 칭찬하며 일을 떠 넘겼다가 더 윗사람이 그 직원을 맘에 안들어하는 눈치면 그 즉시 부하직원 욕을 함께 하는 사람들이죠. 그 뻔뻔함이 이해도 안되고, 연민도 갖기 힘든 부류입니다만, 은근 조직에서 잘 살아남는 사람들이라서 꽤 자주 출몰하는 사람들입니다.
3. 관종형 무능력자
겉보기는 괜찮지만 심각한 관종에 아주 얇팍한 수준의 자기중심적 잔머리로 똘똘 뭉친 부류의 사람입니다. 자기중심적인 건 위의 설명한 상사들과 똑같지만 아주 얇팍한 잔머리를 많이 굴리고, 처음엔 잘 안보여도 조금만 그 특성을 이해하게되면 거짓말하거나 식언하는게 뻔히 보이는 인간들이죠.
다만 앞서의 두 부류가 자기의 이익을 위해 거짓말을 아주 적극적이고 공격적으로 구사한다면 이 부류는 주로 상황을 회피하기 위해 혹은 방어적인 태도로 거짓말을 구사합니다. 물론 방어적이라고 해서 악의적이지 않다는 전혀 아니구요, 당하는 사람 입장에서는 오히려 더 짜증나기도 합니다. 자기 책임은 쏙 빼놓고 당하는 사람 위로하는 척을 하는 경우가 많거든요. (가령 인사발령에서 물먹은 부하직원에게 위로하는 척 이런 저런 말을 하지만 그런 인사발령이 나게 된 근원을 추적해보면 바로 그 상사일 때가 많죠. 물론 이 상사는 자기가 문제의 근원이라는 걸 인지도, 인정도 하지 않습니다. 스스로는 그저 상심한 부하직원을 위로하는 착한 상사라고 인지합니다.)
4. 회피형 무능력자 (이기심 왕자)
안정성이 높은 조직에서 많이 보이는 부류입니다.
사이코패스나 철저한 자기중심적 상사처럼 적극적이고 공격적인 거짓말쟁이는 아니고, 관종도 아니며, 그저 조금이라도 책임을 져야하는 상황이 싫어서 어떻게든 빠져나갈려고 하는 부류의 사람들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