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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R매거진

애자일과 DT시대의 직무체계 개편 방향성

2020-06-01

 

 

 

우리나라 기업들은 직무체계를 근본적으로 다시 재검토해야 하는 시기를 맞이하고 있다. 이전의 직무체계 개편논의가 주로 구성원들의 전문성을 강화하는 한편 점차 비중이 증가하는 해외 인력들과 인사 플랫폼을 단일화시켜야 한다는 필요성에서 촉발된 것이었다면, 현재의 변화는 기본적으로 빅 데이터, 인공지능 등으로 대변되는 디지털 트랜스포메이션에 기인한 것이다. 새로운 기술혁명이 일자리를 파괴함으로써 노동의 종말을 초래할 것인지 아니면 새로운 일자리를 창출할 것인지 여전히 논쟁이 적지 않지만 그것이 일과 경영의 세계를 과거와는 크게 다른 방향으로 바꾸어 놓을 것이라는 점에 대해서는 이론의 여지가 없다. 그리고 이러한 변화에 대한 대응으로 애자일 경영, 애자일 러닝 등 애질리티Agility가 주목받고 있다. 불확실성이 예측하기 어려울 정도로 높아지는 상황에서 기업들이 민첩성에 주목하는 것은 그만큼 기업들이 직면한 절박한 경영 현실을 반영하는 것이기도 하다.

그렇다면 애자일과 DT 시대는 기업들의 직무체계를 어떻게 변화시킬 것인가. 이것은 곧 기업들이 기존의 직무체계를 어떻게 변화시켜야 할 것인가 하는 것과 동일한 의미를 가진다. 디지털 트랜스포메이션은 직무체계에 두 가지 서로 다른 방향의 압력을 가한다. 먼저, 기존의 직무체계를 명확하고 정치하게 분석하고 정리해야 할 필요성이 증가한다. 환경의 변화방향을 고려해서 기업 내에 남겨둘 일과 외부화 할 일, 그리고 내부에서 수행되더라도 인공지능 로봇이나 RPA에게 맡길 일과 사람이 할 일을 구분해야 하기 때문이다. 한편 예측하지 못한 새로운 역할이나 직무가 등장하는 경우 이에 신속하게 대응해야 하는 필요성이 크게 증가한다. 예측은 종종 기대를 배신하기 마련이며 예측하지 못한 상황에서의 대응이 기업의 생존을 결정한다. 전자의 경우 분석과 예측이 중요하다면 후자의 경우 애질리티가 핵심이다.


DT
시대의 정교한 직무관리
DT
시대일수록 보다 정교한 직무분석과 체계화가 필요하다. 기업은 생산물이나 부가가치를 만들어내기 위한 많은 과업의 집합이며 한 사람이 담당할만한 과업들을 묶어 놓은 것이 직무이다. 직무는 인사관리와 인재개발의 중추이다. 고객이 원하는 서비스나 제품을 경쟁력 있게 제공하기 위해 필요한 일이 명확하게 분석되고 규명되어야 한다. 단순히 어떤 과업과 직무가 존재하는가보다는 기업 목표 달성에 핵심적이고 중요한 것이 무엇인가가 분석되고 평가되어야 한다. 그래야 기업이 반드시 내부에 가지고 있어야 하는 직무와 외부화해도 좋은 직무를 구분할 수 있기 때문이다. 우리나라의 경우 사람 중심의 인적자원 관리를 해 왔기 때문에 굳이 직무에 대한 체계적인 분석이나 평가가 불필요하다는 오해가 적지 않다. 그러나 직무에 대한 이해는 사람 중심의 인적자원 관리에도 필요하다. 사람에 맞추어 일을 주는 경우에도 회사 내에 어떤 일들이 존재하며 그 일을 특정 인물이 잘 할 수 있는가에 대한 판단은 반드시 필요하기 때문이다.

사실 체계적인 직무관리는 굳이 DT 시대가 아니어도 인적자원을 관리하기 위해서는 반드시 필요한 일이다. 지금 그것이 더욱 절실하게 필요한 이유는 과거와는 달리 과업이나 직무를 사람에게 맡길 것인지 아니면 인공지능 로봇에게 맡길 것인지를 판단해야 하기 때문이다. 미래의 이야기가 아니다. 사무관리와 관련된 RPA는 이제 정도의 차이는 있으나 금융권의 경우 활용하지 않는 기업을 찾기가 어려울 정도이다. 직무의 내용을 잘 들여다보면 직무에 포함되어 있는 과업들 중에서 인공지능을 활용해서 처리하는 것이 좋은 것들도 있고 사람이 처리하는 것이 더 효과적인 것들이 혼재되어 있다. 따라서 기계가 가장 잘 할 수 있는 정형적 과업들을 통합해서 인공지능 기계에게 맡기고 인간에게는 인간이 가장 잘 수행할 수 있는 비정형적 과업들을 맡김으로써 효율성과 성과를 동시에 높일 수 있다.

그러나 그러한 방식으로 직무체계를 관리하는 것이 항상 바람직한 것은 아니다. 하나의 직무에 속해있는 정형적, 비정형적 과업들은 종종 긴밀하게 연결되어 있어서 그것들을 분리해서 기계와 사람에게 배분하는 것이 쉽지 않을 수 있다.

경우에 따라서는 <그림 1>에서 보는 바와 같이 사람과 인공지능이 하나의 직무를 협력적으로 수행하도록 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이는 인간과 기계의 협치형 직무관리 전략이다. 우리나라에서도 많이 소개된 독일의 인더스트리 4.0이나 노동 4.0은 그러한 방식으로 사람과 기계가 하나의 직무를 같이 하는 것을 중요한 대안으로 삼고 있다. 서로가 가진 장점을 결합해서 매우 높은 생산성을 달성할 수 있기 때문이다. 동작이 자유롭고 감정표현이 가능한 협업로봇의 등장은 그러한 방향의 직무관리가 가능하도록 지원한다.

 


DT 시대의 애자일 직무관리
새로운 기술변화는 불확실성을 크게 증가시킨다. 기술이 초래하는 변화가 어떤 것인지를 쉽게 파악하기 어렵기 때문이다. 가보지 않은 길을 미리 알기 어려운 것은 당연한 것이기도 하다. 기술변화에 따라 직무의 변동성도 크게 높아지게 된다. 과거에 필요로 했던 과업이나 직무가 기술변화로 불필요하게 되는 한편 새롭게 필요로 하는 과업이나 직무가 등장하기 때문이다. 문제는 어떤 직무가 사라지고 어떤 직무가 향후 생성될 것인지를 미리 파악하기가 쉽지 않다는 것이다. 2013년 프레이와 오스본의 연구, 2016년 세계경제포럼 보고서 등에서 미래의 일자리 소멸 및 생성에 관한 전망을 한 바 있으나 모든 것이 명확하게 정리된 것은 아니며 기업의 입장에서 결과를 직접 직무관리에 활용할 수 있을 만큼 그러한 정보가 구체적이지도 않다.

불확실한 미래에 가장 확실하게 대응하는 것은 미래를 스스로 만들어내는 것이라는 말을 하기도 하지만 말처럼 쉽다면 무슨 고민이 필요할까. 변화를 선견하고 대응하지 못하면 멸망할 것이 확실하지만 그것을 선견하는 것이 어렵다는 것이 문제이다.

이런 딜레마에서 벗어날 수 있는 유일한 해결책은 애질리티를 키우는 일이다. 어디로 공이 튈지는 모르지만 변화하는 방향을 아는 순간 빠르게 대응할 수 있다면 그만큼 생존 가능성이 높아지기 때문이다. 인체의 면역력을 높여서 어떤 바이러스나 독감이 와도 버틸 수 있는 체력을 갖추는 것과 마찬가지다. 디지털 혁명시대 경영의 주요 화두가 애질리티에 맞추어지는 이유이다.

직무관리와 관련된 애질리티를 높이기 위해서는 구성원들이 기술과 환경변화에 따라 필요하게 되는 새로운 과업을 신속하게 학습하는 것이 매우 중요하다. 이를 위해서 채용을 할 때부터 학습 애질리티Learning Agility를 가진 사람을 뽑는 것이 중요하다. 과거의 경험을 통해 의미 있는 학습을 하며 새롭거나 처음 직면하는 상황에서도 학습한 것을 빠르고 유연하게 실천할 수 있는 사람이 필요하다. 개인이 보유한 경험이나 지식, 전문성이 불확실한 미래에도 여전히 성과를 보장해주지는 못하기 때문이다. 지금 많이 아는 것보다 새로운 것을 빠르게 학습하는 것이 훨씬 더 중요한 시대가 됐다.

현재 일하고 있는 구성원의 직무 관련 애질리티를 높이는 것도 중요하다. 이를 위해서는 잡크래프팅Job Crafting을 적극적으로 활용하는 것이 효과적이다. 조직에 의해서 사전에 정해진 직무를 정해진 방식대로 수행하는 것이 아니라 자신이 맡은 직무의 내용이나 범위를 바꾸어 나갈 수 있도록 해야 한다. 사실 아무리 명확하고 체계적으로 직무를 정의하고 분석한다고 해도 환경이 빠르게 변화하기 때문에 사전에 정해진 직무 내용과 현재 필요한 직무 내용과는 일정한 괴리가 발생할 수밖에 없다. 따라서 새로운 상황 변화나 자신의 선호나 역량에 맞게 직무를 변화시키는 것이 미래의 직무변화에 대한 대응 역량을 높여준다. 이와 반대로 늘 정해진 내용의 일을 성실하게 한 사람이 향후 새롭게 바뀌게 될 과업이나 직무에 빠르게 적응하기를 기대하긴 어렵다.

효율성과 유연성의 딜레마
디지털 트랜스포메이션 시대는 한편으로는 직무체계를 정교하고 체계적으로 관리할 것을 요구하고 다른 한편으로는 새롭게 변화하는 직무에 대응할 수 있는 유연성과 민첩성을 갖출 것을 요구한다. 체계화된 직무관리를 통해 단기적 효율성과 성과를 높일 수 있으며 유연화된 직무관리를 통해 지속적인 적응과 생존이 가능하다. 그러나 전자가 너무 강조되면 경직적 직무체계의 함정을 피할 수 없게 되고 후자에 집착하면 당장의 성과나 효율성이 크게 저하될 수밖에 없다.

사실 이러한 경영의 딜레마는 오래전부터 인식되어 왔던 것으로 활용Exploitation과 탐색Exploration의 딜레마로 잘 알려져 있다. 기존 자원을 효율적으로 활용해서 단기적 성과를 만드는 것에만 집중하면 서서히 망하고 미래의 시장이나 제품 개발에만 집중하면 더 빠르게 망한다. 요는 둘 다 잘해야 한다는 것이다.

이와 같은 두 가지 상충되는 요구를 충족시키는 것이 가능할까. 어렵기는 하지만 가능하다. 성공하는 기업은 이러한 딜레마를 해결하는 기업이다. 하나만 잘해서는 성공할 수 없다.

상충되는 환경의 요구를 동시에 충족시키는 기업이 성공한다. 이들 기업의 성공 비결은 무엇일까. 답은 간단하다. 두 가지를 동시에 잘 할 수 있는 사람, 시스템, 문화를 만들어내는 데 있다. 사람 측면에서는 인력과 직무를 체계적으로 운영하고 관리하면서도 구성원들에게 자율적 업무추진이나 잡크래프팅을 인정하고 격려하는 리더가 중요하다. 시스템 측면에서는 기존의 직무체계를 정교하게 하면서도 지속적인 업데이트를 통해 환경변화, 기술변화와의 괴리가 생기지 않도록 하는 것이 중요하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효율성과 유연성이라는 상충되는 요구를 개방적으로 포용하면서 해결점을 적극적으로 모색하는 문화가 필요하다.


HR
부서의 역할
DT
시대를 잘 이해하고 대응하는 HR부서가 되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기술변화에 대한 관심과 이해가 필수적이다. 새로운 기술이 조직의 사업에 어떤 의미나 영향을 미칠 수 있는가를 이해해야 하고 그로 인해 기존의 조직과 직무에 어떤 변화가 필요한지를 스스로 파악할 수 있어야 하기 때문이다. HR부서가 기술 전문가가 되라는 것이 아니다. 기술과 일에 대한 시각을 키워야 한다는 이야기이다. HR부서가 전략적 파트너가 되려면 사업 뿐 아니라 이제는 반드시 기술을 이해해야 하는 시대가 됐다.

한편 사업을 수행하고 과업과 직무를 구성원들에게 배분하는 것은 현업의 리더이다. 다른 모든 HR제도와 마찬가지로 직무체계를 설계하는 것은 HR부서이지만 이를 활용하는 것은 현업 리더들이다. 현업의 리더들이 직무관리의 중심적 역할을 수행할 수 있어야 체계적이면서도 유연한 직무관리가 가능하다. HR부서가 직무관리의 모든 것을 정할 수 없다. 리더들이 자신의 담당한 영역에서 효율화되어야 할 과업들과 자율성과 창의성이 발휘될 업무를 구분할 수 있어야 하고 구성원들이 주도적인 잡크래프팅을 하도록 격려할 수 있어야 한다. 그리고 그런 리더들을 개발하고 선발하는 것이야 말로 HR부서가 담당해야 하는 중요한 역할이다.

마지막으로 애질리티 조직문화를 만드는 것도 HR부서의 중요한 역할이다. 아무리 애자일한 개인을 채용해도 조직문화가 나쁘면 1년 만에 둔해지고 변화를 싫어하는 사람으로 변모하기 일쑤다. 그도 아니면 일찌감치 보따리를 싸서 문화가 좋은 다른 회사로 이직을 했을 것이다. 조직문화를 애자일하게 만드는 것은 매우 도전적인 과제다. CEO의 전폭적인 지지가 필요하고 일관된 노력이 집중적으로 이루어져야 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만들기는 어렵지만 잘 구축된 애자일 문화는 조직 전체의 지속 가능성을 담보해주는 중요한 열쇠가 된다.


박우성 경희대학교 경영학과 교수



본 기사는 HR Insight 내용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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