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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R매거진 정부정책

직원경험 관리자, HR의 새로운 역할

2020-02-21


 

 

 

전 세계적으로 경영계에 유행처럼 번졌던 직원 몰입Employee Engagement의 한계점에 대한 반성과 더불어, 개성 있는 경험세계를 중시하는 밀레니얼 세대의 급부상으로 최근 직원경험 관리Employee Experience Management라는 개념이 주목 받고 있다. 필자는 인사 및 조직관리 전공자로서 지난 몇 년간 국내외 기업을 대상으로 '직원경험EX'이라는 개념에 대해 다각도로 연구를 진행해왔다. 각종 문헌 및 사례조사, 임직원 인터뷰와 설문, 실제 프로젝트 참여, 저서 집필 활동 등을 통해 직원경험 관리라는 개념이 우리 기업에 반드시 도입돼야 하는 개념임을 점점 더 깨닫게 됐다.


직원경험 설계, 일과 삶의 통합 추구
우리 기업들은 최근 개방적이고 수평적인 문화로의 변화를 모색하고 있지만, 여전히 폐쇄적이고 위계에 의한 상명하복식 직장 문화가 지배적이다. 직원을 칭찬하고 인정하는 것에 인색한 편이며, 직원들의 목소리를 잘 경청하지 않는다. 단기적 성과 달성에 대한 압박 때문에 직장 내에 긍정적이고 건설적인 관계는 만들어지기 어려우며, 관리자는 과오에 대한 책임이 두려워 지나치게 통제하거나 부하직원에게 과감하게 권한을 이양하지 못한다.

이러한 복잡한 갈등관계는 상사나 부하 모두에게 스트레스이며, 종종 괴롭힘의 형태로 나타나기도 한다. 오죽하면 직장 내 괴롭힘 금지법까지 발효됐을까. 상황이 이렇다 보니 직원들은 자신의 성공과 조직의 성공을 연결 짓지 않으며, 적당한 기회가 되면 미련 없이 조직을 떠난다. 이러한 무겁고 무기력한 조직 문화 속에서 직원들에게 직무에 몰입하거나 창의적인 사고를 주문하는 것은 어불성설이다. 직무의 몰입감이나 창의성의 발현은 구호로 해결될 문제가 아니다.

이러한 문제의식을 반영하듯 우리 사회에는 최근 큰 화두 하나가 던져졌다. 바로 일과 삶의 동등한 양립을 주장하는 '워라밸'이다. 우리 기업의 고용 모델을 역사적으로 살펴보면 과거 우리 사회는 개인의 삶보다 일에 더 우선순위를 두는 경향이 있었다. 조직을 위해 삶을 희생하는 것이 미덕이었고, 조직에서 얻는 성취물인 급여와 승진 등이 중요한 삶의 동기가 됐다. 하지만 일 중심의 삶은 심각한 직무소진, 만성 스트레스, 가정 갈등을 초래해 급기야 우리나라가 노동생산성 OECD 하위국의 불명예를 얻는 이유가 되기도 했다.

이러한 문제점에 대한 반성으로 우리 사회는 소위 '일과 삶의 양립'을 우리 기업이 지향해야 하는 이상적인 고용 모델로 바라보기 시작했고, 급기야 전국적으로 워라밸 열풍이 불기도 했다. 직장에서 지친 몸과 마음을 직장 밖의 여가와 저녁이 있는 삶으로 힐링하자는 워라밸 구호는 그 도입 취지 자체는 전적으로 동감하나, 여전히 직장은 으레 '오래 있기 싫고, 사람을 피곤하고 지치게 하는 곳'임을 은연중에 암시한다. 결국 희망이 없는 그 곳이 아닌 다른 곳에서 진정한 행복을 찾으라는 외침으로 들린다. 여전히 구시대적 패러다임이다.하루 대부분의 시간을 보내는 직장에서의 행복에 대해 기대할 것이 없다면 우리가 추구하는 행복은 결국 반쪽짜리에 불과할 뿐이다.

직원경험 관리는 이러한 주장에 반기를 든다. 직장은 숨 막히는 일터가 아니라 직원의 자아가 실현되는 삶터가 돼야 하며, 행복을 얻기 위한 수단으로서의 장소가 아니라 행복이 만들어지는 바로 그 장소가 돼야 함을 강조한다. , 일과 삶의 통합Work Life Integration이 구현되는 조직이 직원경험 설계의 궁극적 지향점이다(참고로 독자들의 이해를 돕기 위해 우리 사회의 고용모델의 변화를 <그림 1>로 도식화 했다).




직원의 행복을 제고시키는 방안 고민
그렇다면 이제 HR의 역할은 명확해진다. HR은 직원들의 불행을 유발하는 원인을 제거하고 행복을 제고시키는 방안을 고민하고 그 솔루션을 제도화 그리고 문화화 시켜야 한다. 구체적으로 말하자면, HR은 직원들이 직장 생활에서 겪게 되는 다양한 경험 세계를 면밀히 탐색하고 수집해, 그 중 직원의 삶에 중대한 영향을 미치는 핵심적인 부정적인 경험과 긍정적인 경험(필자는 이것을 핵심사건 또는 MOT(Moment of Impact)라고 개념화했다)을 파악해서 부정적인 경험은 줄여주고 긍정적인 경험은 극대화시키는 노력을 기울여야 한다.

이러한 목적을 달성하기 위한 인사제도나 조직문화 구축의 방향성은 직접적인 문제 인식을 가지고 있는 직원들의 아이디어에 기반한다. 말로만 바텀 업이 아닌 진정한 바텀 업이 구현되는 것이다. 제도의 현장성과 수용도가 높아지는 설계 방식이다. 이렇게 되면 직원들은 자신들의 불만요인과 행복요인에 대한 직접적인 변화나 개선이 이루어짐을 체감하게 되고 자연스럽게 직장생활이 편안해지고 재미있어지고 활기차지고 행복해진다. 회사는 일하고 싶은 곳이 되어가고 자연스럽게 조직의 성과는 향상된다. 궁극적으로 직원이 진정한 행복을 느낄 수 있도록 도와주는 휴머니스틱한 HR 관리기법이라고 할 수 있다.

이러한 직원경험 관리 철학을 기반으로 조직을 변화시켜 급성장을 이루어 낸 유명 사례가 있다. 인도의 IT 서비스 기업인 HCL Technologies의 전임 CEO인 비닛 나야Vineet Nayar는 직원 중심의 회사 운영 철학을 수립하고 여러 가지 파격적인 변화를 만들어냈다. 대표적으로 비닛 나야는 몇 가지 대담한 조치를 취했는데, 첫 번째는 모든 직원들에게 사업부 수준 및 회사의 재무 데이터를 개방하는 것이었고, 두 번째는 직원들이 CEO를 포함한 다른 리더에게 솔직한 질문을 할 수 있는 포털을 제작한 것이었으며, 세 번째는 HCLT의 관리자는 지금까지 비공개로 공유했던 비즈니스 계획을 제출해 전 직원에게 공개하도록 했다. HCLT의 고위 임원과 고객사가 회의하는 모든 과정이 HCLT 직원에게 생중계 됐던 것은 유명한 일화이며, 이러한 조직 운영 방식은 상당히 급진적이고 과히 직원 중심적이라고 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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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직원경험 관리 기반 평가제도 설계
유사하게 직원경험 관리 철학에 기반해 평가제도를 설계한 한 실제 국내 사례가 있다(참고로 필자가 직접 설계에 참여한 사례이다). 국내 유명 IT서비스 기업인 K사는 '직원경험 기반 리더십' 평가 모델을 구축했다. 우선 대표성이 확보된 직원들을 선발해 5차에 걸친 워크숍을 운영했다. 워크숍에서는 몇 가지 활동들이 있었는데, 우선 직원들이 직간접적으로 겪었던 핵심적인 리더십 관련 경험을 집단 토의를 통해 추출했다. 400여건의 리더십 경험이 추출됐다. 이렇게 추출된 리더십 경험들은 직원의 삶에 상당한 영향을 미쳤던 사건들(앞서 언급한 MOI)이었다.


예를 들어, 언제나 조용히 묵묵하게 일하는 직원에 대해서는 그 성실함을 너무나 당연시 여기는 반면, 강력한 불만을 제기하는 직원에 대해서는 팀이 시끄러워지는 것이 싫어서 오히려 해당 직원을 더 챙겨주는 리더의 불합리한 모습에서 큰 실망감을 느꼈다거나, 입사해서 한번도 '수고했다'라는 말을 들어 본 적이 없다는 등의 다양한 부정적 경험들이 공유됐다. 반면, 리더가 직원의 생일까지도 꼼꼼히 챙겨주었던 경험, 다소 부정적인 의견도 웃으면서 불쾌하지 않게 코칭을 받았던 경험, 직원 자신도 모르고 있었던 장점을 리더가 포착해서 인정받았던 사건 등 다양한 긍정적인 경험들도 역시 공유됐다.


이렇게 수집된 다양한 경험 사건들은 그 경험이 중요하게 여겨졌던 이유나 속성을 의미하는 몇 가지의 핵심경험변수KEF, Key Experience Factor로 중심화했다. 가령 어떤 몇 개의 경험사건은 그 내용은 모두 상이하나 공통적으로 리더의 공평한 대우를 의미했는데, 이를 '공정성Fairness'이라는 키워드로 변수화했다. 이렇게 변수화 된 20여개의 키워드를 이용해 직원이 리더를 평가하는 측정지표로 전환했다. 이제 리더들은 직원들의 실제 경험 세계에 바탕을 둔 항목들로 평가를 받게 됐고, 그러다 보니 진정으로 '살아있는' 평가가 이루어지게 됐다. 평가 항목 하나하나에 직원들의 실제 경험들이 고스란히 묻어 있기에, 직원경험에 기반한 HR의 제도(평가제도) 설계의 단면을 잘 보여주는 사례라고 볼 수 있다.

이제 바야흐로 HR은 직원경험의 설계자Designer로서 새로운 고민을 시작할 시점이 됐다. '원 행복 극대화 프로젝트' 의 수행자로서 위계적이고 경직된 우리 조직을 활기차고 행복한 조직으로 탈바꿈 시켜주기를 희망한다


장영균 서강대학교 인사조직전공 교수


본 기사는 HR Insight 2020. 01월호의 내용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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