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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신의 시간을 원치 않는 일에 쓰는 것은 악마의 소행이므로, 불필요한 시간 외 업무는 거절할 것.” 지난 2018년 11월 창시된, 일본의 신흥 종교 MtoP교단의 교리 중 일부입니다. MtoP는 ‘Motohiro to People’의 축약어며, 발음은 ‘엠톱’입니다. 모토히로는 창시자 히사노 모토히로(ヒサノモトヒロ)의 이름으로, 그는 이 종교에서 숭배하는 현인신(現人神)이기도 합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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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주 히사노 모토히로./MtoP교단 공식 트위터 |
왠지 신성한 맛이 부족한 교리에서 엿볼 수 있듯, 이 MtoP교단은 운영 방식이 여타 종교와 사뭇 다릅니다. 우선 MtoP는 교단 가입에 특별한 절차나 의식을 요구하지 않습니다. 대신 MtoP교단 공식 트위터를 팔로우한 이 모두에게 신도 자격을 부여합니다. 또한 교주이자 신인 히사노는 공연히 “내겐 특별한 신의 권능이 없다”고 말합니다. 계명이나 규율이 존재는 하지만 엄히 지킬 필요는 없다 합니다. 헌금이나 포교도 권하지 않습니다. 그렇다면 히사노는 대체 무엇을 위해 이 ‘종교’를 창시한 것일까요. 히사노는 MtoP교단의 존재 의의가 단 하나뿐이라 밝혔습니다. 바로 신도들이 ‘종교상의 이유’로 재직 중인 회사의 부당한 요구를 거절할 명분을 주는 것입니다. 실제로 히사노는 교단의 공식 경전인 ‘R304 경전’에 “종교상의 이유’는 그 어떤 이유보다도 둘러대기 좋은 최고의 핑곗거리다. 그러나 이 말을 실제로 쓰는 사람은 좀처럼 찾아보기 힘들다. ‘종교상의 이유’를 가져다 쓰기 위한 종교가 존재하고, 거기에 준하는 경전이 있다면 좋지 않을까. 바꿔 말하자면 MtoP 교단은 "종교상의 이유"를 가져다 쓰기 위한 종교라는 것이다”고 적었습니다. 이 때문에 MtoP교단의 교리엔 직장인이 현실에서 겪는 문제를 투영한 것들이 많습니다. 이를테면 “권리를 행사할 수 없는 회사 따위는 만악의 근원이므로, 유급 휴가를 전부 소화해낼 것”, “아이와 가정의 행복을 바라지 않는 이상한 상식 따위는 만악의 근원이므로, 육아 휴직·출산 휴가를 최대한 이용할 것”, “무리는 금물이므로, 육체·정신의 건강 관리에 힘쓸 것”, “자동차를 가지고 있다고 해서 당신의 직업이 택시 기사인 것은 아니므로, 운전을 강요하면 거절할 것”, “어차피 돈 낭비일 뿐이므로, 가고 싶지 않은 회식 자리는 거절할 것” 등이 있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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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세나 기적을 바라지 않고 오로지 현실의 삶을 개선할 목적으로 창시된 종교인 만큼, 교주이자 신인 히사노 역시 언론 인터뷰에 평범한 복장과 태도로 임하는 등 세속적인 모습을 굳이 감추지 않습니다. 취재진이 자택을 방문하자 잘 익은 벼처럼 허리를 굽히는 히사노 교주./아베마TV |
이런 희한한 종교가 나타날 수 있던 배경엔 일본 특유의 독특한 노동기준법 해석과 적용 관행이 있습니다. 지난 2015년 9월 고용노동부가 발표한 ‘채용상 차별에 관한 해외사례 및 실태조사 연구’에 따르면, 일본은 노동기준법 제3조에서 규정하는 ‘사상이나 신조 등에 의한 차별 금지’에 의거해 근로자가 종교로 인한 불이익을 받지 않도록 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채용 과정’에는 관련한 법령이나 규정이 없다는 이유로 사상이나 신조를 근거로 한 발탁 거절을 인정해 주고 있다 합니다. 즉, 직장인이 되면 신앙생활을 존중받을 수 있지만, 교인은 애초에 취업문에서부터 가로막힐 위험이 있는 오묘한 상황인 것입니다. 그러므로 기존에 믿던 종교가 없는 청년이라면, 무종교 상태로 입사를 시도해 채용 확정 후 야근이나 주말 근무 등을 거절할 만한 명분을 주는 종교의 신자가 되는 것이 꽤 효율적인 전략입니다. 하지만 종교 대부분은 교인으로 인정받기까지 여러 절차를 밟거나 상당한 기간에 걸쳐 교육을 받아야 합니다. 입교 이후로도 종교 행사에 개인 시간을 투자해야 하는 경우도 많고요. 자칫하면 회사 일을 피하려다 종교에 시간을 더 쏟는 사태에 직면할 수도 있죠. 게다가 기껏 공들여 교인이 됐더니 상사가 "말 같지도 않은 소리"라며 일축하면 어떻게 될까요?
MtoP는 바로 이 지점을 파고들었습니다. 종교를 근거로 회사의 요구를 거절할 명분을 제공하는 동시에, 교인의 의무는 지지 않도록 해주며 신앙 생활에 별 관심 없는 직장인이 편익만 취할 길을 열어 주는 방식으로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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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교상의 이유로 야근은 좀…”/아베마TV |
물론 아무리 사상을 존중하고 종교에 따른 불이익을 주지 않는다지만, 이처럼 해괴한 종교를 디밀며 회사 일을 기피하는 직원이 사내에서 사람대접을 받을 수 있겠냐는 지적이 나올 법도 합니다. 하지만 이미 일본 청년 다수는 직장 내 평판이나 출세 등에 관심과 미련을 두지 않고 있습니다. 지난 2017년 6월 일본생산성본부가 그해 봄 입사한 기업 신입사원 1882명을 대상으로 의식조사를 한 결과, 48.7%가 '주위 사람들(동료, 상사, 부하)이 야근을 하더라도 자기 일이 끝났다면 퇴근한다'고 답했습니다. '직장의 동료, 상사, 부하 등과 근무시간 이외에는 어울리고 싶지 않다'는 항목에는 30.8%가 '그렇다고 생각한다'고 답했고, '데이트 약속이 있는데 야근 명령을 받을 때'에는 28.7%가 '거절하고 데이트를 하겠다'는 답을 내놓았습니다. 일본생산성본부는 저출산 여파로 일할 사람은 부족한 반면 일자리는 넘쳐나는 데다, 2015년 대기업 덴쓰(電通)의 신입사원이 과도한 야근에 시달리던 자살하는 사건이 일어난 것을 계기로 직장 생활보다는 개인의 삶을 우선시하는 태도가 확산했다 추정했습니다. 조사를 담당한 나츠키 객원연구원은 “회사의 '학대'에 불안을 느끼는 신입사원이 늘고 있다”며 “개인 시간을 얼마나 가질 수 있는지에 관심이 높아지고 있다”고 설명했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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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단에서 공식 제공하는 한국어판 경전./MtoP교단 공식 홈페이지 |
아무튼 현재 MtoP교단의 신도, 즉 공식 트위터 팔로워 수는 약 1만2000여명에 달합니다. 한국에도 신도가 존재하는 관계로 교단 홈페이지에선 일본어뿐 아니라 영어와 한국어로도 경전과 교리를 전하고 있습니다. 여담으로 교주 히사노는 MtoP교단을 믿는 이가 한국에도 여럿 나타났다는 이야기를 듣자, “세계 진출은 생각지도 못했다. 내 불찰이다(世界への流出はマジで考えてなかったわ、不覚すぎる)”고 말했다 합니다. /사람인 HR연구소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