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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R매거진 정부정책

IT기업 조직관리, 어떻게 변화해야 하는가

2021-10-12

 


 

정명호 이화여대 경영대학 교수

 

 

최근 국내 대표 IT기업들의 직장 내 괴롭힘 문제가 논란이 되고 있다
동안 수평적 조직문화와 우수한 근무환경으로 입사 희망순위 1, 2위를 다투던 선도적 IT기업들에서 왜 이런 문제가 발생하고 있는가? 사실 최근 모 국립대 갑질 사례처럼 직장 내 괴롭힘과 일탈행동은 어느 조직에나 존재함에도 불구하고 이것이 혁신기업들에서 더 강하게 부각되는 이유가 있다. 흔히 IT기업 문제에 대한 처방으로 소통 강화, 평가제도와 조직문화 개선 등을 말한다. 그러나 문제의 원인은 몇몇 관리자의 일탈이나 일부 평가제도의 문제보다 더 크고 근본적인 데 있다

실리콘밸리 성과주의와 한국식 성과주의의 충돌이 근본 원인
현재 국내 IT 혁신기업들은 구글, 애플로 대표되는 실리콘밸리 혁신기업들의 조직관리 모델을 그대로 따라가고 있다. 흔히 실리콘밸리 기업 하면 대학 캠퍼스 같은 사무실과 환상적인 복지제도를 떠올리지만, 그 핵심은 우수인재 중심의 강력한 시장형Market 성과주의이다. 세계에서 가장 우수한 인재를 확보했기 때문에 그들의 잠재력을 훼손할 수 있는 불필요한 관리를 최소화하고 자유를 최대한 보장하지만 그 대신 담당업무에서 최고의 성과를 입증하지 못하면 도태된다. 국내 대기업 같은 체계적인 육성이나 멘토링, 직무순환도 별로 없다. 누가 무슨 일을 어떻게 하고 있는지 투명하게 공개되기 때문에 평가 역시 실명으로 동료나 상사를 평가하는 냉정한 방식이다. 예를 들어, 입사 후 짧은 수습기간이 끝나면 같이 일하고 싶은가를 동료들의 투표로 결정하는 경우가 많다. 이번에 카카오에서 문제됐던 정도의 평가는 아무 것도 아니다. 만족할 만한 성과를 보여주지 못하면 아웃이고, 상사의 권한도 상당히 강하다. 서로 별명을 부른다고 수평적이라고 오해하면 안 된다

국내 선도 IT기업에서도 성과 극대화를 위해 각 조직장에게 업무지시, 승진, 평가보상, 스톡옵션까지 큰 권한을 부여하고 있다. 겉보기엔 수평적이지만 성과관리가 상당히 강하다. 이것은 구성원들이 비교기준으로 삼고 있는 국내 대기업의 공동체형Community 조직관리 모델과는 큰 차이가 있다. 사실 카카오가 우수직원에게 선별적 복지를 주려던 것은 실리콘밸리식 모델에서 보면 당연한 것이다. 그러나 이것이 복지에서까지 차별하느냐는 구성원의 비판에 부딪혔다. , 현재 국내 IT기업의 문제는 실리콘밸리식 시장형 성과주의 모델과 한국식 공동체형 성과주의 모델의 충돌에 근본적인 원인이 있다

더구나 국내 선도 IT기업 구성원들은 최고의 우수인재라고 자부하는 사람들이다. 이직을 결심한다면 구글, 애플도 못갈 것 없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조직에 기대하는 심리적 계약Psychological Contract 자체가 매우 높은 기준에서 형성되어 있다. 그렇기 때문에 최근 코로나19 팬데믹 상황에서 크게 성장한 회사나 경영진이 받는 보상에 비해 자신들의 보상이 공정하지 않다고 느낄 수 있고, 이것이 평가기준 공개와 같은 절차 공정성, 상호작용 공정성 요구 등 조직관리 전반에 대한 불만으로 확대되고 있다.


전환점에 선 IT기업, 평가 공정성 확보가 관건
과거 혁신기업으로 출발했던 마이크로소프트가 대기업화, 관료화되면서 우수인재 이직 등 문제를 겪자, 직원들의 불만을 달래기 위해 상대평가 등급제 폐지, 복리후생 강화 등 조치를 취했지만 현재 마이크로소프트의 혁신 경쟁력은 회복되지 못했다. 국내 IT기업들 역시 당장 불을 끄기 위해 소통 노력과 같은 피상적 조치로 끝난다면 마이크로소프트의 길을 그대로 따라갈 것이다. 핵심은 위에서 말한 2가지 모델 중 어느 쪽을 선택하는가이다. 정답은 없다. 꼭 실리콘밸리 모델만이 성공을 보장하는 것이 아니며 공동체형 모델로도 혁신기업이 될 수 있다

그러나 글로벌 우수인재를 잡으려면 철저한 개인중심 차별적 성과주의로 가야 한다는 압박이 있다. IT기업에 투자하는 벤처캐피탈이나 기관투자가들도 실리콘밸리식 경쟁주의를 준거모델로 삼고 있다. 하지만 직무기반 조직관리가 부재하고 정확한 성과평가가 안 되는 국내 상황에서 보상격차가 확대되면 당장 평가 공정성 문제가 대두될 것이다. 고성과 우수인재 중심 문화에서는 더욱 그렇다. 구성원들 역시 이러한 모델을 확실히 받아들일 준비가 돼 있는지 진지하게 고민해야 한다. 예를 들어, 실리콘밸리 혁신기업들은 같은 팀원 간 연봉격차가 5~6배까지 벌어지기도 한다. 이것을 감당할 수 있겠는지 자문해야 한다.


이것도 저것도 아닌 선택을 했을 때, 국내 선도 IT기업들의 미래는 불확실하다. 분명한 것은 '최고의 보상은 탁월한 동료'라는 말처럼 우수인재들이 모일 수 있는 조직을 만드는 것이 성공의 열쇠라는 점이다. 조직 민주주의를 확대하면서 어떻게 탁월한 인재를 끌어올 수 있는지 끊임없이 고민해야 한다. 우수한 복지, 무료식사 등은 겉으로 보이는 껍데기일 뿐이다


* 정명호 교수는 이화여자대학교 경영대학 인사조직 분야 교수로서 사회적 네트워크, 고성과 팀, We-리더십 등 주제를 연구하고 있다. 현재 ()한국인사조직학회 31대 회장으로 활동하고 있으며, 「인사조직연구」 편집위원장을 역임했다. 저서로는 《매니지먼트 이론 2.0》 《K-매니지먼트 2.0》 《휴먼 네트워크와 기업경영》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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