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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R매거진

유비의 적은 내부에 있었다 [더플랩]

2022-11-30

추산 시가총액이 13조5458억원에 달하는, 유럽 최대 게임회사인 유비소프트(UBISOFT)의 직원들이 지난달 29일 회사를 규탄하는 성명문을 발표했습니다. 글에는 최근 논란이 된 사건들에 대한 회사의 대응과, 이에 대한 대처를 보며 구성원들이 느낀 실망이 담겨 있었는데요. 우리나라에도 레인보우 식스 시리즈, 어쌔신 크리드 시리즈, 파 크라이 시리즈, 레이맨 시리즈 등으로 잘 알려진 이 프랑스 게임사에 무슨 일이 있었던 것일까요.

우리나라에도 ‘레이맨 시리즈’로 잘 알려진 프랑스 게임 회사 유비소프트에, 대체 무슨 일이 있었던 것일까요./유비소프트 게임 ‘레이맨’

지난해 6월 '어쌔신 크리드 발할라'의 디렉터 아쉬라프 이스마일이 유부남이었음에도 결혼했음을 알리지 않고 여러 여성과 관계를 맺은 사실이 알려지며 디렉터직에서 사임했습니다. 뒤이어 '와치독스 시리즈' 마케팅 담당자 안드리엔 지비니와 홍보 담당 부사장 스톤 친의 폭행 혐의가 불거졌습니다. 게다가 ‘스플린터 셀’과 ‘파 크라이’의 크리에이티브 디렉터 맥심 벨랜드가 파티 중 여성 직원의 목을 조르는 등 폭행 가해자로 지목됐고, 크리에이티브 서비스 임원 토미 프랑수아가 여성 여럿을 성희롱하고 폭행했다는 혐의가 제기됐습니다. 벨랜드와 프랑수와는 여직원들이 요구를 들어주지 않으면 블랙리스트에 이름을 올리고 불이익을 줬던 정황까지 드러났습니다.

프랑스 매체인 리베라시옹의 보도에 따르면, 유비소프트는 임원들의 비행을 알고 있었지만 아무 조치도 취하지 않았다 합니다. 오히려 인사부가 주도해 피해자를 회유하거나 겁박했고, "그들과 일하기 싫으면 떠나라"며 문제를 일축했습니다. 2015년에는 ‘괴롭힘 방지 행동 수칙’을 만들자는 움직임을 인사부가 나서서 무산시켰다는 사실도 밝혀졌습니다. 당시 인사부는 “직원에게 괴롭힘이 정말로 발생할 수 있다는 믿음을 심어주게 된다”며 제동을 걸었다 합니다.

유비소프트의 손을 거쳐 세상 빛을 본 게임들./유비소프트

유비소프트 직원 1만4000명을 대상으로 한 익명 설문조사에서 응답자 중 25%가 지난 2년 동안 직장 내 부정행위를 직접 목격하거나 경험했다고 응답했습니다. 또한 20%는 회사 내에서 자신이 온전히 존중받지 않았다 답변했습니다.

이러한 사실이 폭로되자 세실 코네 유비소프트 글로벌 인사부장이 자리에서 물러났습니다. 유비소프트는 직후 "경멸과 차별을 허용하지 않는 회사 가치관에 따라 구조적인 변화를 시행하고, 모든 이가 안전하게 일할 수 있는 곳을 만들겠다"며 적극적인 문제 해결을 약속했습니다.

그러나 올해 5월 프랑스 매체 르 텔레그램이 진행한 조사와 바로 다음 달 프랑스 IT연대가 한 발표를 종합하면, 유비소프트 인사부는 여전히 성추행 사건 일부를 은폐하고 가해자도 대부분은 처벌하지 않았다 합니다. 또한 여성 직원 비율을 늘려나갈 것이라 말하고도 이를 위한 조치는 행하지 않았던 것으로 드러났습니다.

유비소프트 공동 창립자이자 CEO인 이브 기예모./유비소프트

많은 회사에서 HR, 즉 인사 부서에 조직문화를 관리하고 개선할 책임을 부여합니다. 실제로 지난해 8월 HR Insight가 기업 인사담당자 382명에게 하반기 주요 계획을 설문한 결과 47.1%(복수 응답 허용)가 택한 ‘조직문화 개선 활동’이 1위를 기록하기도 했고요. 인사담당자 역시 다수가 조직문화를 HR의 업무 영역으로 인식한다는 것이죠.

이를 뒤집어 말하자면, 유비소프트에서의 사례처럼, 인사 부서에서 작정하면 조직문화가 손쓸 도리도 없이 망가질 리스크 또한 존재한다는 것입니다. 상황에 따라선 주범으로 몰린 인사 부서가 뒷수습까지 가로막으며, 소 잃고도 외양간조차 고치지 못하는 전개가 벌어질 수도 있고요. 실제로 지난해 여름 코네는 사건이 터진 직후 부서 직원 90여 명을 소집해 폭로 사태와 인사부는 관련 없다는 여론을 조성하라 지시했고, 유비소프트 몬트리올 인사부장은 이에 호응해 “CEO가 이번 사태 인사부는 잘못이 없다는 성명을 내놓지 않으면 부하 직원 절반을 데리고 퇴사하겠다”는 선언을 했습니다. 이처럼 유비소프트는 인사 부서의 폭주를 제어하지 못한 결과, 사건이 불거진 직후에도, 그리고 폭로 후 1년여가 지나 프랑스 IT연대가 고소장을 제출할 때까지도 문제가 여실히 드러난 조직문화를 제대로 고치질 못했습니다.

유비소프트 몬트리올 외관./유비소프트 몬트리올

기업에선 간혹 이러한 사태를 막고자 조직문화 기능을 일부 혹은 전부 떼내어 전담 부서로 재편하는 경우가 있는데요. 상황에 따라선 그것만으로도 부족할 수도 있는 듯합니다. 유비소프트 또한 사태 직후 인권 담당 부서인 ‘리스펙트 앳 유비소프트’를 신설했으나, 피해 신고가 100건 이상 접수되고 가해자로 지목된 직원 20여 명을 내부 조사했는데도 제대로 처벌받은 이는 드물었다 합니다. 그저 논란에 휩싸인 몇몇을 퇴사 조치하고 대다수는 다른 팀으로 발령 내는 데 그쳤을 뿐이었습니다.

이 때문에 유럽 현지에서는 이브 기예모 유비소프트 CEO에게 책임을 묻는 여론도 나오고 있습니다. 일탈과 폭주 자체는 인사부가 주도해 벌인 일이지만, 그럼에도 이를 관리하고 나아가 원활히 수습할 의무는 CEO가 져야 한다는 것이죠. 기능은 그저 존재하는 데에만 그치지 않고, 상위 직책자나 외부의 통제 및 견제를 거치며 정상적인 작동을 담보 받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실제로 프랑스 IT연대는 지난 7월 제출한 고소장에 인사부장인 코네뿐 아니라 전 CCO인 서지 헤스콧, 유비소프트 CEO 이브 기예모를 모두 적어냈습니다. 이들은 트위터에 올린 성명을 통해 “(유비소프트 CEO는) 직원을 보호하기보다는 괴롭히는 사람을 기용하는 것이 보다 돈이 된다는 이유로, 성희롱과 폭력이 용인되는 설치·유지·강화한 제도적 주체로서 책임이 있다”고 했습니다.

/사람인 HR연구소